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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의 나라①…달콤했던 포퓰리즘은 끝나고

10/10/2019 10:23

복지주의로 경제 악순환…위기 극북 위해 개방 정책 취했지만 경제 종속 가속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대통령궁 2층 베란다에서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플라사 데 마요 광장에 모인 노동자들에게 단결을 호소했다. 그의 옆에는 후안 페론 대통령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노동자의 나라를 건설할 것을 다짐했다.”

 

미국 헐리웃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한 에비타(아르헨티나 페론 전대통령의 부인 에바의 애칭)의 향취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곳곳에 배어 있다.

 

1990년대말 필자는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레콜레타 공원묘지, 대통령궁, 플라사 데 마요 광장을 들르는 시민들은 죽은지 40년이나 지난 에비타에 대한 칭송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수도를 가로지르는 대로에는 어린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차 숲을 누비며 구걸을 했다. 교통체증으로 밀려 있는 도심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삶의 공간도 제공하지 못했다. 그들에게서 에비타와 페론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르헨티나는 영화 ‘에비타’의 무대다. 노동자의 힘을 빌어 정권을 장악한 페론 장군과 그의 부인 에바의 이야기는 혁명과 야망으로 점철된 1940년대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후안 페론은 2차 대전 직후인 1946년 “인민의 폭력은 폭력이 아니다. 그것은 정의다.”라며 노동자의 힘을 빌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이 되기 앞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할 때 페론은 노동자가 그의 정치적 기반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 노동자를 조직했다.

 

사생아로 태어나 사창가를 전전하며 고생했던 여배우 출신 에바는 페론을 도와 노동자를 조직하는데 앞장섰다. 그녀의 사교술, 웅변술은 대중을 이끌기 충분했고, 페론이 군부에 구속됐을 때 그녀는 열렬히 구명운동을 했다.

 

페론은 그녀와 재혼함으로써 이념의 실천자를 확보했다. 페론 부부는 혁명과 야망으로 점철된 1940년대 아르헨티나를 개조하기 위해 남미식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유럽에 뒤지고 있는 나라를 강력하고 부강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민간 기업을 국영으로 전환하고, 노동단체에 막강한 권력을 심어줬다. 노조 조직률은 50%로 당시 어느 유럽 국가보다 높았고, 노동귀족이 판을 쳤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한 에바와 페론 /위키피디아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한 에바와 페론 /위키피디아

 

에바는 페론이 재선에 당선된 직후 1952년 자궁암으로 사망했다. 에바가 죽은 후 아르헨티나는 극심한 무역적자에 시달렸고, 정치적 동지를 잃은 페론은 갈수록 급진 성향을 드러냈다. 그러다가 13살 짜리 소녀와의 추문으로 그는 학생과 교회의 반발을 샀고, 1955년 마침내 군부의 반발로 대통령직에서 하야, 파라과이로 망명했다.

 

페론 축출 후 군부통치가 지속됐다. 1973년 선거에서 페론이 자신의 대리인으로 내세운 엑토르 캄포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귀국했다. 공항에 집결, 그를 기다리던 수백만명의 지지자들은 경찰과 충돌, 수백명이 죽는 불상사가 났고, 캄포라는 즉시 하야했다. 다시 치러진 선거에서 페론이 직접 출마, 당선됨으로써 그는 18년만에 다시 대통령에 복귀했다. 그때 그는 부통령으로 세 번째 부인인 이사벨을 임명했다.

 

대통령 복귀도 잠시, 그는 1974년 7월에 급서했고, 부인 이사벨이 대통령을 이어받았다. 그녀는 둘째 부인 에바만큼 유능하지 못해 극우파에 질질 끌려 다녔고, 76년 3월 군부에 의해 축출당했다. 그후 13년이 지난 1989년 페론의 후계자임을 자처한 카를로스 메넴(Carlos Saul Menem) 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페론당이 다시 집권했다.

 

페론이 죽어도 페론주의 신앙은 오랫동안 아르헨티나를 지배했다. 페론주의자들은 국영기업체와 노조를 장악했다. 군대는 노동자와 인민을 위해 존재했고, 그들의 구원자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군사정부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에 무참히 패배했고, 경제는 1980년대말 사실상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1980년대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12%나 줄어들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조금도 생각지 않고 돈을 찍어댔다.

 

군부정권도 페론주의를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노조는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결과는 경제 전반에 창궐한 고질병이었다. 페론주의는 근로자들에게 직장을 철밥그릇처럼 보장해주었지만, 직장 내에는 활기가 없었다. 적당히 일해도 봉급을 받을텐데,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는 사회였다. 산업은 정부의 철저한 보호 속에서 생산성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화가 제대로 걸리지 않았고, 우편물이 전달되지 않는 게 다반사였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인민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오늘의 환율이었다. 달러를 가지는 게 가장 안전한 도피처였고,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쓰레기처럼 취급됐다.

 

자료: Economic Issue

자료: Economic Issue

 

1989년 또다른 페론주의자 카를로스 메넴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아르헨티나를 넘겨받았을 때 경제는 완전히 붕괴해 있었다. 20세기초 세계 10대 강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당시 70위권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는 처음에 다른 페론주의자들처럼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를 밀고 나갔다. 그러나 곧바로 실패했다. 1991년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은 2,300%에 이르렀다.

 

메넴 대통령은 방향을 바꾸어 도밍고 카발로(Domingo Cavallo)라는 미국 물을 먹은 학자를 재무장관에 기용했다. 카발로는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를 한 학자였다. 카발로는 입각과 동시에 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그가 그때 쓴말이 “마취도 할 수 없는 수술(surgery without anesthesia)”이었다.

 

메넴 대통령은 카발로를 입각시키면서 손을 댄 일은 페론주의의 청산이었다. 명분상으로는 페론주의를 건드리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페론주의가 지향한 보호주의와 사회주의 정책을 포기하고, 글로벌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시장원리와 개방원칙을 받아들였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 질서에 탑승한 것이다.

 

메넴은 우선 바닥에 주저앉은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IMF에 구제요청을 하고 페론주의 독소 제거를 요구하는 까다로운 IMF 프로그램을 수용했다.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거나 외국에 매각하고, 기업주로 하여금 근로자 해고를 마음대로 하게 허용했다. 그리고 그의 선배들이 외쳤던 ‘양키 고홈’이라는 구호를 포기하고, 대신에 ‘양키, 컴온’을 부르짖었다.

 

글로벌 경제 이론으로 무장, 새롭게 탄생한 페론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 보라. 이미 세계 경제는 미국화(Americanize)되고 있질 않는가. 우리만 반대방향으로 갈 수 없다. 마침내 우리도 미국을 따라가야 한다.”

 

“페론주의는 경제적 독립이다. 그런데 전화가 불통인데 어떻게 독립을 주장하라는 말인가.(국영전화회사의 서비스는 엉망이었다)”

 

“예전엔 양키 자본이 침략해 들어온다고 걱정을 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보호주의적 경제가 가져온 결과가 무엇인가. 이미 양키 자본이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지 않는가. 이를 빨리 수용하는 길밖에 없다.”

 

경제 개혁안은 카발로 장관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중앙은행의 화폐 인쇄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통화위원회(Currency Board)’라는 독특한 환율 운영체계를 시행했다.

 

에바 페론 /위키피디아

에바 페론 /위키피디아

 

아틀라스뉴스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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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기사는 누리버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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